89. 할로윈(Halloween)과 기독교

10월 중순부터 미국 전역은 할로윈 축제와 행사로 떠들썩해진다. 여기저기 할로윈을 상징하는 호박 램프와 우스꽝스럽거나 괴기스런 장식들이 쉽게 눈에 띈다. 미국 전역에서 할로윈은 매우 유명하고 지명도 높은(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문화행사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문화행사에 대한 우리 기독교의 이해와 적용은 어떠할까?

우선 할로윈의 대표적인 유래와 몇몇 상징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사실 할로윈의 원래적 의미를 이해함에 있어서 기독교 내부 특히 교회에서는 너무 일방적인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무조건적으로 터부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할로윈 행사 속에는 귀신이나 유령에 대한 언급과 함께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가지 설중에서 대표적인 할로윈의 유래는 고대 켈트인(人)의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그것은 죽음의 신(神) 삼하인을 찬양하고 새해와 겨울을 맞는 축제로, 이 날 밤에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어 이 축제는 유령•마녀•도깨비•요정 등과 함께 불길한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또한 이 날은 악마의 도움으로 결혼•행운•죽음에 관계되는 점을 치기에 좋은 때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유래로 인해 기독교 내에서는 할로윈에 대해 어느정도 배타적이며, 보수주의적인 교단에서는 금기시까지 한다.
 
하지만 할로윈데이나 그 행사는 기독교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고 기독교적 배경을 담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위와 같은 이교적인 축제들은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함께 모든 성인(聖人)의 날 대축일(11월 1일)의 전날 밤의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할로윈 용어도 사실은 기독교적 배경에서 유래되었다. ‘hallow’란 앵글로색슨어(語)로 ‘성도(聖徒)’를 뜻하며, ‘All Hallows’ Eve(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前夜祭)’가 줄어서 ‘Halloween’이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어린이들은 무에 jack-o'-lantern을 새겨 그 안에 초를 넣었는데, 미국으로 이민을 온 스코틀랜드인들이 무를 호박으로 바꾸어 퍼뜨렸다고 한다. 모든 성인의 날 전날은 유령파 마녀의 대부분이 주위를 배회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쁜 악령을 쫓는 의상을 입는 풍습이 행해졌다. 그 시대에 만연되었던 마녀나 악귀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오늘날 할로윈의 전형을 제공하였다.

또한 현재 할로윈의 장난스런 풍습(Trick or Treat)은 17세기 아일랜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의 아일랜드 빈민층은 죽음의 신(삼하인) 대신에 성 콜럼바(Columba)를 기리는 성찬의 음식을 사려고 집집마다 돈을 구걸하였고 영국에서는 플러 데이(역주 , Plough Day, 주현제(Epiphany ;구세주가 태어난 날. 크리스마스 후의 제12일째 동방박사 3명이 베들레헴에 주 예수를 경배하러 온 날)후의 제1월요일)에 가난한 사람과 음식을 함께하는 풍습이 있어서 가난한 농부들은 집집마다 구걸하곤 했다. 이때 인색한 부자들에 의해 쫓겨나면 그들의 곡물 을 파헤쳐버린다는 위협을 한 데서 그 기원이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미국 어린이들, 청소년들의 축제로 유명하다. 학교에서는 가장(假裝) 무도회가 열리고, 밤이 되면 도깨비•마녀•해적 등으로 분장한 어린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치겠다(Trick or Treat)’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초콜릿과 캔디를 얻어 간다.

요즘 할로윈 행사 속에 어떤 종교적, 영적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현대의 할로윈은 발렌타인 데이나 크리스마스 행사와 같은 상업적 의도와 문화적 즐김의 일환으로 행해지고 있다. 물론 이런 기업이나 자본주의의 상업적 이용에 휩쓸린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재고해 보고 올바른 자각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대응으로 그저 무조건적 거부나 배타적 입장만을 취한다면, 그것은 문화를 적용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지극히 소극적인 대처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을 밝히고 선도하는 기독교적 정신은 오히려 세상을 포용하고 이해하면서 변화시켜야할 적극적 문화 대응을 요구한다. 우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문화적으로 소외당하거나 극단적인 방향만을 선택하지 않도록 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선별능력을 키우도록 교육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할로윈에 대한 정확한 유래와 그 의미를 일러주고 그 속에 내포되어있는 옳고 그른 가치들의 선별을 통해 문화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와 할로윈: 적극적, 선택적, 대체적, 배타적 수용

미국의 한인교회들, 다양한 모습으로 할로윈 준비 [2009-11-0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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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구세군교회가 개최한 Fall Fest.
미국에서는 매년 10월 31일이 되면, 마녀나 도깨비로 분장한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며 “Trick or treat”를 외친다. 할로윈은 미국의 가장 대표적 어린이 축제로 자리잡은 절기지만 요즘은 대학생이나 성인들도 이날만큼은 각종 의상으로 분장하고 거리를 다니며 해방감을 만끽한다.

그러나 기독교적으로 볼 때 할로윈은 결코 반가운 절기만은 아니다. 할로윈은 미국에 이민 온 아일랜드인의 풍습에서 시작된다. 켈트족은 11월 1일 새해가 시작된다고 믿었고 1년의 끝은 10월 31일로 여겨졌다. 이날은 죽은 영혼과 귀신, 유령이 이 땅에 내려온다고 믿었고 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켈트족들은 유령의 의상을 입고 집을 무시무시하게 꾸몄다. 이렇게 하면 유령들이 자신을 같은 편인줄 알고 해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이 켈트족의 풍습에 가톨릭이 11월 1일 전통적으로 지켜 오던 만성절이 결합하며 All Hallow’s Eve인 10월 31일이 Halloween으로 명명됐다.

보통 기독교계는 할로윈을 반기독교적 문화로 규정해 왔다. 그 유래가 이교적 마녀 풍습에서 시작됐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마귀, 악마로 분장해서 거리를 다니는 현상만 봐도 결코 기독교적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부모들은 “어린이들이 그냥 즐기는 문화다”라는 측면에서 이를 오히려 권장하고 재밌게 즐기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요즘은 교회도 할로윈을 무조건 금기시하기보다는 어린이들이 할로윈을 교회에서 보내며 오히려 기독교적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들도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할로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먼저는 “적극적 수용”이다. 할로윈의 이교적 분위기를 배제하지만 문화적 요소는 적극 받아들여서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는 형식이다. 구세군 메이페어커뮤니티교회는 지난해에 이어 할로윈에 Fall Fest를 연다. 이날 교회에서 캔디와 초콜릿, 선물을 나누어 주며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각종 놀이기구를 설치한다. 작년에 구세군교회는 이 행사를 지역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홍보해 350여명의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할로윈을 보냈다. 이중 70% 이상이 라티노였으며 그 나머지가 한인, 백인과 타인종들이었다. 구세군교회는 할로윈의 문화를 이용해 지역사회 복음화의 기회로 삼고 있는 유형이다. 한사랑장로교회도 지역 어린이들을 초청해 Hallelujah Night을 연다. 한사랑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미국인교회 어린이들, 지난 여름 VBS 참가 어린이들 약 50여명이 이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며 맛있는 식사와 찬양, 게임, 갓스 이미지의 특별공연 등이 준비돼 있다.

“선택적 수용”도 있다. 한인서부교회는 가을축제에서 할로윈 의상 콘테스트를 한다. 어린이들이 가장 즐기는 것이 아무래도 재미난 의상을 입는 것이니만큼 어린이들이 친환경적이며 기독교적인 의상을 마음껏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할로윈의 문화적 요소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형식이다. 한인서부교회는 가을축제에서 게임과 노래,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적 수용”은 가장 많은 교회들에게 선택받고 있다. 갈릴리감리교회의 어린이 축제, 그레이스교회의 Fall Faith Fest, 헤브론교회의 Holy-Win Fun Fair,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의 Hallelujah Party, 포도원교회의 Gospel Night, 엑소더스교회의 Hallelujah Night, 살렘연합감리교회의 Fall Fun Festival, 남부시카고한인연합감리교회의 Halo-ween Party는 교회가 나서서 어린이들이 할로윈을 대체해 즐길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하는 형식이다. 이 교회들은 할로윈이 끼치는 영적 문제에 집중해 이 절기와 문화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며 기독교적으로 이 날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타적 수용” 형식은 주로 보수적 한인교회가 선호한다. 시카고한인교회는 Hallelujah Party로 할로윈을 보낸다. 배타적 수용의 핵심은 게임과 놀이 외에 예배가 포함된다는 점이다. 할로윈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것 외에 아예 예배까지 드려 이에 대한 영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시카고한인교회는 10월 31일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축제의 날로 선포하며 교회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친구들을 초청하는 전도의 날로 삼을 계획이다.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도 Holywins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개최하며 각종 놀이와 함께 예배를 드린다. 참길장로교회도 출애굽기를 주제로 Blessing House라는 기독교적 행사를 연다.

시카고=김준형 기자 newspaper@chtoday.co.kr

 

 

Re..할로윈의 기독교적 의미?  


저도 아직은 공부가 미천하여 문화와 인류학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는 분들의 논의를 다 알지 못합니다.
이곳의 두란노서점에서 해리포터에 대한 논의가 있는 책을 잠깐 읽고 깜짝 놀란 적은 있었습니다.
요즘의 문화에 대한 생각들이 기독교 학자들 사이에도 다양하고 극단적이었습니다.
한 쪽은 해리포터가 마술에 대한 책이라 공립도서관에도 비치해서는 안된다는 입장, 물론 이것은 기독교와 비기독교와 상관이 없는 근본주의적 사고였지요.
또 한 입장은 헤리포터는 마술이 아닌 유머이고, 상상력이고, 문화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글쎄, '니버의 문화의 그리스도'의 고전적인 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런 문화를 어떻게 보고 수용할 것인지는 반응이 아주 다양할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보면서 저의 할로인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한 가지 응답을 한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추석이나 설을 명절로 즐기지요.
이것을 제사와 같은 선상에서 우상숭배이고, 기독교적이지 않고, 미신적이고, 샤머니즘 적이라고 기독교인은 즐겨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참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사실 근본적 기독교의 입장, 혹은 서구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오해할 소지가 아주 많이 있는 문화적인 현상이 우리 명절입니다.
물론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 비기독교적인 문화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명절은 우리가 밝고 명랑하게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일 뿐이고,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방법이겠지요.
이곳 북미의 한인교회에서도 할로윈데이 대신에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만들자고 하여 ‘할레루야데이’란 것을 만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신학을 하신 1.5세 전도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의 사고와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저 할로윈은 노인네들이 어린아이들을 대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날인데 하며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그냥 풍습이라고 말입니다.
유머지요.
이곳 현지교회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있었는데, 그 분들은 할로윈을 우리 나라의 어린이날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유령복장이나 괴물 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것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는데, 나름대로 천사복장이나 동물 분장으로 창조적으로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 입장으로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씁쓸했습니다.
유령복장은 안되고, 천사복장은 되나?
사실 그렇게 보면 천사는 어디에 있고, 천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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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전 할로윈이 기독교다 반기독교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할로윈을 크리스마스처럼 우리나라에서 지켜야할 풍속이라고 소개하지도 않았고요.
그저 이들의 감각, 이들이 즐기는 풍습, 이들의 공동체의식, 이들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끝이 없을 것같습니다.
기독교적이고 반기독교적인 것이 무엇이냐에서부터 그 정의를 짚고 넘어가야겠지요.
뭐가 영적이고 뭐가 육적이냐는 고전적인 논의에서부터 말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완전히 영적이거나, 완전히 육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런 이원론의 세계는 왜곡된 플란톤주의, 서구 세계관의 한 사조일뿐입니다.
밥벌이 하려고 택시운전을 해도 영적으로 할 수 있고, 육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부부간에 섹스를 해도 영적으로 할 수 있고, 육적으로 할 수 있지요.
또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려도 그것이 얼마든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육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술과 담배도 그렇습니다.
사실은 마음의 지향과 자세의 문제이란 말입니다.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조항일 뿐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제약되는 '율법'입니다.
다 바꾸어 갈 수 있는 일입니다.
할로윈도 사실은 기독교적이거나 비기독교적인 게 아니지 않을까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한국의 큰 이슈 가운데 하나인 제사의 문제도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목회 현장에서 그것 때문에 고통 받는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바울도 분명히 우상에게 준 제물을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바울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정죄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수준에까지 가 있지요.
그런 세계가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기에 알겠지만, 그렇게 접근하면 아이들이 볼 책이나, 만화나, 영화가 없습니다.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기독교인을 들을 음악이나, 볼 영화, 읽을 책이 뭐가 있을까요?
심지어는 한국의 태백산맥과 같은 소설도 공산주의 책이 되고, 난잡한 성적인 부정을 미화하는 3류소설이 되어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닙니다.
예술은 메타포어라고 생각합니다.
상징이지요.
우리 삶의 자리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전 디지몬이나 포켓몬스터에서 시대를 읽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읽고, 또 다른 차원, 영적인 경험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희 세대가 우리가 빠삐를 보고, 아톰을 보고, 마린보이를 보면서 상상력을 키우고 자랐듯이 말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은 원래 다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무엇이 기독교 음악일까 하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베토벤이나 바하나 헨델은 기독교 음악이 아닐까요?
뉴에이지 음악이 뭐지요?
우리 가슴을 뛰게 하고 우리의 생각을 끊고 참 삶을 가치와 수준을 승화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기독교 음악이 아닐까하는 것이 저의 막연한 고백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할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전 헤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디지몬에서 삶의 다른 차원을 향한 끊임없는 사람들의 노력과 상상력과 철학을 보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불교 영화라고 보지 말아야한다고 하는데, 산물넷 영화방에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전 매트릭스에서 큰 은혜(?)를 받았더랬습니다.
http://sanmul.net/technote/read.cgi?board=bomul&y_number=0&nnew=2

다시 할로윈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할로윈 밤을 경험하고 다음날 보니 동네가 예전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동네가 이제는 한 집 한 집 친근했지요.
저 집에는 어떤 할머니가 사시고, 우리를 어떻게 맞아주었고, 어떤 분위기였고,,,, 하나 하나 떠오르는 겁니다.
정말 친해졌습니다.
할로윈 밤에 저희들이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아이들이 오나 오지 않나 창문가에서 서성이다가 반갑게 달려나와 맞아주던 그 마음들이 따뜻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쉬움이지요.
이것은 이교적이기 보다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자리에 있는 이들의 또 다른 풍습 가운데 하나로 그냥 보고 싶었고, 그래서 나누어 본 것이지요.
어색했고, 이해하기 어려우셨다면 죄송하고요.
너그러이 본래의 의도와 마음만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름: 깊은산 (eastsain@chol.com)